군대를 추억케 하는 부산의 눈...

Posted by Casker
2010. 3. 10. 16:22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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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더니, 깜깜한 밤이 되자 빗물이 얼어붙어서 슬러시 같은 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새 눈이 내렸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눈이 10cm가량 쌓여 있었다. 골목 골목엔 빗자루와 넉가래를 가지고 나와서 제설작업을 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 무료(?)에 낚이다

어영부영 정신을 차리고 어제 받아두었던 커피무료 쿠폰을 소진해 버리기 위해 ?[눈이나 비가 온 뒤의 길을 무척이나 싫어함에도_보는건 좋아한다] 눈이 와서 미끌거리는 길을 지나 근처 던킨도너츠로 향했다. 요샌 이런 쿠폰들 덕(?)에 하지 않을 소비도 종종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어지간하면 마시지 않지만, 크림치즈베이글을 사면 커피를 무료로 준다라는 말에 혹해서 베이글을 사먹기도 하고?[베이글은 개인적으로 좋아한다._도넛처럼 달지도 않고 고소함이 있어서 좋다]? 맥모닝을 사면 1+1 해준다는 말에 햄버거가 더 좋지만 계란이 들어간 맥모닝을 먹기도 한다.

열심히 찾아간 던킨에서 베이글을 냠냠쩝쩝 먹어치운 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뉴스를 보니 전국적인 폭설로 영동지방은 수십cm, 경남지방은 5~6cm정도의 눈이 와서 큰 교통혼잡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부산 해운대의 설경을 보여주며 뉴스가 진행되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수년 전 군복무를 할 때가 떠올랐다. 

 

부산 폭설의 현장(?)

 # 부산 해운대로 떠나다

2004년 여름, 12월 군 입대를 앞두곤 친한 친구들과 입대 전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나자 마음 먹고 코스를 짜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춘천을 거쳐 동해로 가는 코스를 생각했었다. 그 당시 나와 친구의 자취방이 춘천에 있었기 때문에 춘천에서 가볍게 닭갈비를 먹고 하루밤 묵은 뒤 다시 동해로 떠나자는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기예보가 우리를 고민에 빠뜨렸다. 태풍이 남에서 북으로 이동해 오고 있다는 예보였다. 당시 부산 인근에서 태풍이 이동 중이란 말을 듣곤 나는 친구들에게 부산으로 목적지를 바꾸자고 권했다. 우리가 부산으로 내려가는 동안 태풍이 동해로 올라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된다 안된다 하는 친구들과의 의견충돌 끝에 결국 내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우리는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으로 향하는 길 내내 하늘은 어두컴컴했고, 비는 우리차량을 쫒아다니면서 비를 뿌리는 듯 주구장창 빗길 속을 달렸다. 친구들은 나에게 "니 말 괜히 들었어. 부산가도 비만 계속 오는거 아냐?"라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내심 나도 괜히 부산으로 가자 했나라며 조금씩 후회의 마음이 들고 있었다. 몇시간을 달려 이윽고 부산의 초입에 다다랐을 때, 친구들을 향해 거만한 웃음을 날릴 수 있었다.

부산에 있던 태풍은 내 예상대로 동해쪽으로 올라갔고, 부산은 구름이 많긴 했지만 나름 괜찮으 날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친구들은 그제서야 내 선택이 옳았다며 불과 수십여분 전의 태도와 정 반대의 모습을 보였었다. 아무튼...여러가지 사건(?)과 난감한 일들을 겪으며 친구들과의 여름 여행은 마무리 되었고, 그로부터 5개월이 흘러 나의 군생활이 시작되었다.

 

 

# 부산에서의 인연(?) 

12월의 쌀쌀한 어느 날, 나는 입대를 위해서 서울에서 출발 충남의 논산 훈련소로 향했다. 논산에서의 약 5주간의 훈련병 기간을 마치고, 또 다시 약 1개월간의 신병들의 파라다이스인 대전 통신학교를 거쳐, 입대 후 약 2달 보름이 지나서야 자대배치를 받게 되었다.

 

근데 이게 왠걸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향한 곳은...유난히도 익숙한 그 곳.. 바로 부산이었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군입대전 마지막 여행은 왜 내가 부산으로 왔던걸까? 하는 묘한 느낌이 들며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부산 시내엔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그 당시 기억으로 100여년 만에 내린 폭설로 부산은 난리도 아니었다. 강원도 지역 같이 눈이 많이 오는 곳들은 눈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는 반면 부산은 다른 지역에 다 눈이 내릴 때도 비만 내렸기 때문에 차량들도 스노우체인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제설차량자체도 많이 없어서 눈만 조 내렸다 싶으면 난리통이 되는 것이었다. 마침 내가 갔을 땐 낙동강 하류 지역의 비닐하우스 지역이 폭설로 인해 수백동이나 무너져 내려서 대민지원을 한창 나갈 시기였다. 자대 배치와 동시에 보름간의 대민지원으로 내 군생활은 시작됐었다.

 

군생활을 생각하면 묘한 느낌이 든다. 처음 자대배치를 받았던 날부터 전역하던 날까지 전부는 아니지만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는 날들이 꽤 많다. 평상시에 겪을 수 없는 특별한 상황이어서 더욱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뭣도 모르는 이등병 땐 개념을 어디다 두고 왔냐며 고참들에게 많이 두들겨 맞기도 했고, 저~기 구석에 있는 빨래 건조장이나 화장실 구석에 끌려가서 오래도록 욕을 들어먹기도 했다. 당시엔 기분도 나쁘고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서 선임병과 싸울 뻔도 했었는데...ㅋ

 

부산에 관련된 기사를 보니 문득 잊고 있던 군대 생각이 나서 군대에서 몰래(?) 찍었던 사진 몇장을 꺼내어 보며 그 때의 추억을 떠올려 봤다.

사격장에서 훈련용 수류탄이 손에서 터져서 의무대에 갈 뻔한 어리버리한 녀석도 생각나고, 처음 수류탄과 기관총을 쏴보며 그 묘한 짜릿함과 두려움에 긴장했던 기억도 난다. 손바닥과 팔꿈치, 무릎이 다 까져가며 받았던 훈련소의 각개전투도 기억나고, 눈물 콧물 쏙 빼던 화생방 훈련도 기억난다. 뭐 동료들과 함께 했던 통신훈련도 기억에 많이 남고, 발에 물집 잡혀가며 갈증으로 힘겨워 했던 비오던 날의 40km행군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엔 포기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괴로웠던 일들 이었는데...휴~ 이제 지나고 보니 다 추억이 되었다.경계초소에서 바라보던 광안대교의 모습이나 중계소로 파견을 나가서 바라보던 부산항의 모습, 장난감처럼 내려다보던 부산시내의 모습 그 모든 것이 그리워진다.

다들 지금은 무얼하고 있을까...부산의 눈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그들의 요즘이 궁굼해졌다.

내무실 옆 층계에서 동료들과...


유격 복귀행군 중 잠시 휴식 시간에 후임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