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음과 객기의 말로

Posted by Casker
2010. 3. 6. 01:52 일상

#시험

눈을 떴다.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핸드폰으로 손이 간다. 11시다.

이번 자격증 시험 벼락치기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다. 뭐 크게 어려운 시험은 아니지만 평소에 별로 사용하지 않는 툴에 대한 시험이라 그간 탱자탱자 놀며 공부했긴 하지만 불안감은 있었는지 불안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아서 부족한 실습을 하다보니 아침해가 뜨는지 창문 밖이 서서히 밝아졌고, 야행성(?)인 몸뚱아리가 햇볕에 반응을 하는지 급격히 몰려오는 피로감에 잠자리에 들었었다. 

앞으로 시험까지 7시간. 몽롱한 정신을 잡아가며 냉장고를 뒤적거리다 어제 먹다 남은 단호박 피자가 보인다. 냉장고 속에서 완벽하게 식어버려서 딱딱한 피자. 그치만 데우기 따위의 귀찮은 과정은 생략한다. 그냥 한조각 손에 들고 우적우적 먹기 시작하며 컴퓨터를 켰다. 아직 몇시간 여유가 있어서 다시 기출문제로 연습을 했다. 2시...3시...4시...기출문제를 풀 때마다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에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다보니 어느덧 5시가 됐다. -_-!! 시청역까지 가야하는데 1시간 안에 갈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이 엄습했고, 불같은 스피드로 준비하곤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요약 정리한 것을 좀 보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지하철에 사람이 많다. 서는 역마다 사람이 많아서 문이 두번씩 열렸다가 닫힌다. 문이 여닫히는 횟수가 증가할 수록 내 심장 박동과 혈압도 같이 증가하는 듯 하다. 시험 시간까지 들어가지 못할거 같다는 초조함에 핸드폰 시계와 남은 정거장 수를 반복적으로 확인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심장이 터져버리기 전에 지하철은 시청역에 도착했고, 서둘러서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시험을 치렀다. 시작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음에 가까운 키보드 타이핑 소리는 마치 누가 더 빠르게 타이핑하는지 겨루는 시합에 나간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연습해 왔던 대로 문제를 풀어나갔지만 마지막 문제에서 계속 에러가 생겨서 낑낑거리고 고민하다가 결국 시험시간 종료로 1문제는 풀지 못하고 나왔다. 마지막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던 찜찜함과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피곤이 몰려왔다.

 

 

# 버스를 타자... 귀찮음과 객기의 시작 

집으로 돌아가려 시청역으로 발길을 향하던 중 "버스를 타고 갈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면 2번 환승을 하고, 역에서 나와서도 집까진 꽤 걸어서 가야 하지만 버스를 타면 집 코 앞까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게다가 지하철의 답답함을 싫는 나는 여지없이 버스를 타고 가자!! 라고 마음을 바꿔먹었고 남대문으로 향했다. 일전에 카메라 수리를 위해서 남대문 카메라 상가에 올 때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왔던 기억이 있었기에 내렸던 반대편에서 타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한참을 걸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_-;;

남대문 상가 주변을 거쳐

 

그러나...
집 반대 쪽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은 찾았으나 집 쪽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버스정류장은 완전 동떨어진 곳에 있었다. ㅠ_ㅠ 급 좌절. 사실 이 때만 해도 근처의 지하철 역을 찾아갔었더라면 편하게 집에 올 수 있었다. 하지만 -_-;; 꼭 버스를 타고 가야겠다고 객기를 부리기 시작한 나는 남대문 이쪽 저쪽을 헤집고 다니며 버스 정류장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근 30분을 헤메여도 내가 타려던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비슷한 번호의 버스는 엄청나게 지나갔지만..] 

 

 명동까지 걸었다

 

 

잠도 몇시간 못 잔 상태에서 책과 카메라를 넣은 가방까지 메고 거의 1시간을 걷고 나니 슬슬 다리와 허리가 아파왔고 짜증+피곤이 극에 달했다. 왠지 더 걷다보면 입에서 육두문자가 쉴새없이 새어나올거 같았다. 조금 편해보자고 버스를 타려던 나는 1시간 이상을 방황하며 피곤함과 짜증만을 얻은 채 결국 명동에서 지하철로 집으로 귀가했다.

매번 느끼는거지만 나는 왠만하면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하고 사는게 더 편한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다. 조금 편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행동하거나 요행을 바라고 행동하면 언제나 그 끝이 좋지 않았다. 그냥 우직하게 살아나가야 할 운명인가보다. 사실은 내가 워낙 좀 길치라서 길을 좀 익혀 보자는 생각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건데 그럴 때마다 매번 1시간 이상 길을 헤메다가 더 지쳐서만 돌아온다. 길 잘 찾아 다니는 사람들의 능력(?)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 기운회복 

40여분 뒤,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 속에서 빠져나왔다. 이미 진이 다 빠져버린 몸뚱이를 억지로 움직여 집으로 향했다. 지친데다가 배도 너무 고파서 집 앞의 편의점에서 햄버거를 하나 데워 먹었다. 햄버거가 데워지는 20초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띵! 하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허겁지겁 녀석을 꺼내서 한입 베어 물었다. 아....순간 기운이 쭉 빠졌던 몸에 힘이 돌아오는 것 같다.

 

 

 

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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