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바라보며...
# 검은색 비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떨어지는 빗소리도 영 기운이 없게 느껴진다. 멍하니 창 밖을 보며 소리를 듣고 있는 내가 기운이 없어서 인지 아니면 정말 비가 힘없이 내리고 있는건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잠깐 우산을 쓰고 걸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는다. 귀찮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창 밖의 빗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싶다.
#빨강색 비
통통 자동차 위로 튀어오르는 빗소리가 경쾌하게 느껴진다. 우산을 쓰고 걷던 발걸음을 멈춰서 잠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비가 와서 우산을 챙겨 나가야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이런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비는 참 고맙다. 이런 날은 무작정 평소에 가보지 않은 길들만 골라서 걷곤 한다. 무언가 새로운 즐거움을 맞이할 수 있을거 같은 기대감과 설레임을 잔뜩 품은 채...
# 형광색 비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비가 내린다. 가뜩이나 술에 취해서 흐려진 시야는 안경에 차오른 습기 때문에 더 흐려진다. 어지러워서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빗물이 잔뜩 고인 보도블럭 위를 지난다. 그 고인 물 위로 몽롱하게 흔들리는 세상이 그려진다. 이런 몽롱한 기분과 오묘한 불빛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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